「김덕기 박사의 풍수 이야기」 사람을 살리는 땅 십승지 ⑮

제3승지 보은 (3)

속리산 우복동 이야기

 

우복동(牛腹洞) 풍수 이야기

 

• 십승지와 결합한 우복동

 

조선 시대 민중들의 십승지 관념은 보통 청학동, 우복동으로 표현됐다.

청학동은 신선이 깃 푸른 학을 타고 구름 위와 명산을 노니는 곳으로 세속의 고통과는 거리가 먼 지상낙원을 의미했다.

신라 말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리산 신선이 된 후 지리산 깊은 산속 어딘가에 살고 있는 곳이 청학동이라고 믿어 왔다.

속리산 우복동은 지리산 청학동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인 유토피아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세상 사람들이 일컫는 동천복지는 청학동과 우복동” 이라는 이규경의 말로도 확인된다. 두 이상향 모두 산지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복동은 청학동과 장소의 이미지가 다르다. 우복동은 소의 배 속 같은 편안하고 넉넉한 골짜기, 청학동은 푸른 학이 날아 깃든 듯 청아하고 신비로운 골짜기다. 우복동이 풍요로움이 묻어나는 복지의 생활형 이상향이라면, 청학동은 무릉도원과 같은 승지의 신선경 이상향이다. 지형적으로도 차이가 난다. 우복동은 속리산 바깥 기슭의 분지에 있어 농경지가 넓고 비옥하지만, 청학동은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어 논밭이 협소하고 척박하다. 따라서 두 이상향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성격도 다르다.

 

우복동은 조선 후기의 사회공동체적인 이상향 담론이지만, 청학동은 고려 후기의 개인 은일적인 유토피아 담론이다.이렇듯 조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지도 속에 속리산은 이름처럼 세속의 난리를 벗어난 이상향이었다.

 

『정감록』 십승지에 속리산 기슭의 ‘사증항’ 근처가 언급되고 이에 우복동의 관념이 보태지면서 속리산의 매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비결을 믿는 백성들은 속리산 증항 주변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복동을 찾아 속리산 기슭으로 몰려왔다. 우복동으로 들어가는 입구 시루봉 맞은편 도장산 자락아래 비스듬히 누운 큰 바위엔 ‘동천(洞天)’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위 시조를 읊은 봉래(蓬萊) 양사언의 행서체라고도 하고 도장산 심원사 수도승 개운 화상의 글씨라고도 한다. 누군가가 이곳이 십승지임을 만천하에 밝히고 싶어 만든 암각서임에 틀림없다.

 

 

임진·병자 양란이 온 산하를 할퀴고 지나간 조선 후기 『정감록』을 신봉해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인 비결파(秘訣派)들은 식솔들을 이끌고 우복동으로 들어갔다.

 

조 선 의 유 학 자 들 도 우 복 동 에 관 한 기록을 여럿 남겼다. 그 기록들을 보면 당시 우복동을 그린 그림이나 기행문인 노정기(路程記) 등이 불티나게 팔렸던 듯하다. 그렇다면 우복동은 어디일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우복동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속리산에서 멀지 않은 충주에 은거한 적이 있는 그는 우복동의 소문을 정확히 파악하려 애썼다.

 

“들어가는 길이 두어 갈래 있는데, 공통적으로 문경 쪽으로는 폭포와 석문이 등장한다. 그 동구에 세워진 비석의 ‘우복동비기시(牛腹洞秘記詩)’에는 ‘훗날 우레가 동구 문을 깨뜨려 인간 세상과 통하면, 그때 이 동천 안에서 인재가 나올 것인데, 영광되고 현달함이 비할 바가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 우복동은 낙토와 복지의 대명사로 여겨져 많은 민중이 여기서 생활 터전을 일궜다. 그런데 속리산 우복동이 정확히 어딘지는 여러 설이 분분했다. 조선 후기에 어찌나 우복동에 대한 의견이 많았던지 실학자 이규경은 ‘우복동변증설’, ‘우복동진가변증설’ 등의 글까지 써서 검토했을 정도다. 이규경이 인용한 우복동 노정기를 살펴보면, 우복동의 지세는 지금의 행정 구역으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화산, 광정마을), 견훤산성이 있는 장암리, 칠층석탑(보물 제683호)이 앉은 상오리 일대로 추정한다. 지리적으로는 속리산(1,058m), 청화산(984m), 도장산(828m)의 삼각형 꼭짓점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도 그중 하나로 추정된다.



양사언의 초서체


김덕기 법학박사/부동산학박사
- 연세대학교 이학사
- 성균관대학교 문학 석사
- 건국대학교 부동산학 석사·박사
- 동국대학교 법학 박사
- 전) 법무법인 하우 부동산·금융 수석 전문위원

- 전) 동국대학교 법학대학 일반대학원 겸임교수
- 현)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
- 현) 부동산포털 한국도시환경헤럴드 발행인
- 현) 법률사무소 두남 고문
- 현) 주식회사 두남씨앤디 대표이사






작성 2023.10.18 15:08 수정 2023.10.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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