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가는길 ①
성해응은 『동국명산기』에 “복천사 동쪽을 내산, 법주사 위쪽을 외산이라고 하는데, 내산에는 돌이 많고 외산에는 흙이 많다.”고 적었다. 흙이 많다는 외산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양 조건이 갖춰졌다는 뜻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살 만한 가거지(加居地)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법주사가 창건된 지 233년 만인 784년(선덕왕 5년)에 진표율사가 김제 고을의 금산사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회심(回心)이 저리 존엄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고 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산으로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다’는 뜻에서 속리산(俗離山)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다른 하나는 신라 말 최치원이 이곳 속리산에서 읊었다는 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道不遠人 바르고 참된 도는 인간을 멀리하지 않는데,
人遠道 인간은 그 도를 멀리하려 든다.
山非離俗 산은 세속을 떠나려 하지 않는데,
俗離山 세속은 산을 떠나려 한다
속리산에 최치원의 탄생 설화쯤 되는 ‘금돼지’ 전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미뤄볼 때 최치원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속리산쯤 되는 명산이라면 제아무리 싫다고 떠났던 인간이라 할지라도 난리가 났을 때 능히 불쌍한 인간들을 깊이 숨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십승지는 전란이 미치지 않아 몸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정감록』에서 지정된 십승지가 모두 한양이나 고을로 이어지는 큰길이 아닌 지리적으로 내륙의 산간오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계이선생가장결』에 있는 “황간 영동 사이에는 만 가호가 살아나고 청주 남쪽과 문의 북쪽 역시 모습을 숨길 수 있다. 이런 세상을 맞아 남편은 밭을 갈고 아내는 베를 짜되 벼슬자리에 오르지 말고 농사짓는 데 부지런히 힘씀으로써 스스로 살길을 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조선 시대에 십승지라는 이상향의 담론이 형성된 사회적 배경은 조선 후기 내외적으로 전란 및 정치적 혼란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은은 경상·전라·충청 등 삼남의 요충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이곳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신라는 보은의 오정산 능선에 크고 단단한 성을 지었다. 지금의 보은군청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다.
3년에 걸쳐 지었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란 이름이 붙었다. 신라 자비왕 13년(470년)에 축조한 성곽이다. 성은 납작하게 사다리꼴로 다듬은 돌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만들었다. 당시 쌓은 그대로 남아 있는 성벽의 부분은 1500년이란 시간을 버텨왔다.
이 성에 주둔했던 신라의 부대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554년 7월 관산성(옥천)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을 사로잡은 부대가 이곳에서 출발했다. 신라가 얼마나 이 성을 자랑스러워했는지는 태종무열왕이 당나라 사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여 접견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는 비록 당나라와 사대(事大)를 하지만 자주(自主)의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나라 사신을 위압하려 했던 것이리라.
차를 몰고 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외속리에서 내속리로 이어진 505번 지방도로를 타볼 만하다. 삼가천과 서원계곡을 끼고 달리는 이 길 위에 오르면 멀리 속리산의 암봉들이 펼쳐지고 좌우로 따라오는 삼가천이 운치를 더해준다. 보은에 도착했다면 일단 여장을 풀고 속리산에 가야 한다.
보은군은 대한민국 충청북도 중남부에 있는 군이다. 서쪽으로 대전, 청주, 남쪽으로 옥천군, 북쪽으로 괴산군과 맞닿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속리산 국립공원을 경계로 경북 상주시와 접한다. 보은군 속리산 말티재는 자연생태계를 복원한 숲 체험 휴양마을이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와 오염된 환경에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만끽할 수있는 최고의 힐링 장소다.말티재 꼬부랑길은 완만한 경사와 빼어난 경관으로 일반인들의 산책코스는 물론 전지훈련 선수 및 마라토너 등 전문 체육인들의 기초체력 훈련장으로도 유명하다.
높이 20m에 달하는 전망대는 말티재 12구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로, 특히 황금빛 낙조가 아름다워 전국의 사진작가와 동호회원에게 명소로 꼽힌다.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여덟 개 구간으로, 1,683m 규모의 짚라인 시설을 갖추고 있는 산외면 장갑리 알프스 휴양림도 유명하다.
매표소를 지나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이 일주문이다. 사찰을 통과하는 첫 ‘산문(山門)’이다. 대부분 산의 이름과 함께 현판에 적혀 있다. 법주사 현판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고 적혀있다. ‘호서(湖西)’는 ‘금강’의 경계로 나눠지는 지역을 말한다. 즉, 금강의 서쪽에 위치한 ‘충청남북도’를 말한다. ‘호남(湖南)’은 ‘금강’의 남쪽 지역, ‘가람(伽藍)’은 승려가 사는 사찰,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란 충청남북도를 통틀어 가장 큰 사찰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영남(嶺南)지방’은 ‘영(嶺, 고개)’의 남쪽 지방을 말하는데, 그 기준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소백산맥’을 가르는 대부분의 고개를 말한다. 대표적인 고개가 ‘문경새재’가 있는 ‘조령’이다. 조령은 옛 선조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고개다.
김덕기 법학박사/부동산학박사
- 연세대학교 이학사
- 성균관대학교 문학 석사
- 건국대학교 부동산학 석사·박사
- 동국대학교 법학 박사
- 전) 법무법인 하우 부동산·금융 수석 전문위원
- 전) 동국대학교 법학대학 일반대학원 겸임교수
- 현)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
- 현) 부동산포털 한국도시환경헤럴드 발행인
- 현) 법률사무소 두남 고문
- 현) 주식회사 두남씨앤디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