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50년째 살고 있습니다만 (이유진 저, 예미)

이시우 기자

작성 2020.07.10 15:25 수정 2020.07.10 15:25



[책 소개]

 

1970년생, 네 자매의 둘째 딸인 이유진 저자가 자신에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에세이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꿈꿔왔던 저자 자신의 삶을 씨줄로, 지난 50여 년 동안 보아왔던 아버지의 인생과 가족의 지난 세월을 날줄로 엮어 그때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생각을 담았다. 저자는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딸 넷을 키우면서 겪었을 고생과 가장의 무게를 오십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유진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독자들도 자신의 아버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은이 소개]

 

이유진

 

오십이 가까운 어느 날 아버지를 위한 사부곡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딸 넷의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했을 무게와 시간을 오십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남들과 다른 아버지가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이 내게 준 의미를 글로써 정리하고 있다.

음악과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염탐하고, 익숙지 않은 자유를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출판사 서평]

 

네 자매의 둘째 딸, 70년생 이유진

 

이 책은 1970년생 저자 이유진의 50여 년의 삶을 일별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간략히 돌아보며 늘 벗어나고자 했다고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꿈꿔왔다고 고백한다. 이어지는 1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여러 순간들을 추억한다. 주위 어디를 가든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 동네 구석구석을 오가며 놀았던 기억,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들었던 노래들과 그로부터 떠오르는 감정과 장소 그리고 일상, 쉰이라는 나이가 되어 금주를 했던 경험 등 삶의 다양한 기억들을 때로는 담담히 또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렇게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배운 고민과 깨달음 그리고 인생의 자세를 서술한다. 저자는 남들과 다름에 굴하지 않고,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도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그 힘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다름을 추구했고 같지 않음에 불안을 느끼지 않았으며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았다고, 하고 싶은 것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즐기며 해냈다고 덧붙인다. 그런 자신의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다며, 무엇이 되었든 다 해줄 거라고, 하나씩 뭔가를 이룰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북돋워주고 지원해주셨다고 감사해한다. 아버지는 누구에게 의지하려 말고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며 무엇을 하든 칭찬을 하고 환하게 웃으시며 다음엔 그 이상을 해보자고 하셨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힘들어하거나 곤란에 빠졌을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는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슈퍼맨이라 부른다며 항상 지켜보고 따르려는 마음을 갖는다고 덧붙인다. 그런 아버지의 든든한 지지와 가르침을 통해 자신은 용기는 없어도 도전은 한다고, 못 할까 봐 걱정할 시간에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고 말한다.

 

50년을 함께 살아온 아버지께 보내는 사부곡

 

3부에서는 아버지와 50년을 살아오며 보아왔던 여러 경험과 추억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생각을 책 속에 하나씩 담아낸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이 자신에게 준 의미를 되짚어 본다. 저자는 50여 년의 삶을 살고서야 딸 넷의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했을 무게와 시간, 그 고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평생 양쪽에 가득히 짊어졌을 가장의 짐을 헤아린다. 단번에 담배를 끊으셨다는 말에는 당시 네 딸과 부모님까지 여섯 가족이 방 한 칸에 살아야 했던 가혹한 현실과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금연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까 이해한다. 아버지가 50대 초반에 쓰셨던 글을 기억하며 지금의 자신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아버지가 느끼셨을 외로움, 허무함, 팍팍함 등의 감정을 헤아리며 안쓰러움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는 뛰어난 손재주로 옥상에 평상을 만드시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뚝딱뚝딱 고치셨던 맥가이버 아버지의 모습도 기억한다. 항상 밥을 차려 주시고 혼자 밥 먹을 때엔 옆에 앉아 계셨던 아버지, 네 자매가 심지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날을 기념해 뭔가 사 들고 오셨던 아버지, 옥상에 작은 밭을 일구고 각종 토마토와 상추, 고구마 등을 심고 기르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있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며 자신은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곁에 있음에 감사해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어머니, 네 자매, 사위들 등 그런 아버지의 주위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언니와 동생들의 결혼 이야기, 같은 건물에 사는 딸들과 세 사위를 포함한 가족모임 이야기, 네 자매의 추억 이야기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팔순 이야기까지 가족의 지난 세월과 현재를 그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딸들은 지금도 아버지 집에 모여 앉아 웃고 떠든다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이유진 저자의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도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나는 아빠나 엄마가 옭아매어 키운 것도 아닌데도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 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언니의 영향이었을까, 또래보다 어려운 책을 일찍부터 읽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중국설화집인 듯 신선에 대한 얘기, 플루타르크영웅전과 같은 책을 읽었고, 초등학교 때에는 우리와 비슷한 딸 넷의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둘째 조의 독립된 삶에 매력을 느꼈고, 중학교 때에는 보바리 부인을 읽으며 계약결혼을 알게 되었으며,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을 읽으며 자유를 그렸고, 그러면서 딸 넷 중 하나는 달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10-11)

 

70년생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특별히 어느 누가 자유를 구속하지 않았음에도 늘 벗어나고자 했고 늘 자유를 그리워했다. ‘나의 삶을 살고자 부단히 애를 썼음에도 저 밑바닥에는 여자’, ‘결혼이라는 굴레에 갇혀 살았다. 사회통념 그 틀에 과감히 맞서 싸우지는 못하고 머릿속으로만 나만은 벗어나야지하며 살았다. (14)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등 노래를 들으며 이대로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나아감과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는 꿋꿋함이 전해져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노래가 되었다. (30)

 

아빠도 그랬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유진아,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빠가 다 해줄게라 하셨고, 공부하고 있는 내 뒤에서, 상장을 내밀 때면, 성적표를 바라보며,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뭐가 되었든 아빠가 다 해줄 거라고 하셨다. (58)

 

남들과 다름에 굴하지 않고,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도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그 힘이 내게 있었다. 다름을 추구했고, 같지 않음에 불안을 느끼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을 했고,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즐기며 해냈다. (67)

 

아빠는 우리들에게 네 주먹을 믿으라고 하셨다. 아빠는 당신의 주먹을 믿는다고 하셨고, 너희들도 누구에게 의지하려 말고 네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공부를 하고 성적표를 받고 어찌 되었든 칭찬을 해주셨다. 그다음 환하게 웃으시며 다음엔 그 이상을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아빠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70-71)

 

내 나이 사십 대 중반 몇 년을 자전거 몰고 한강으로 나갔고, 한동안 강을 바라봤다. 아빠는 매일 한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느낀 외로움, 허무함, 팍팍함 등의 감정을 아빠도 고스란히, 아니 나보다 더하게 느끼셨겠지. 안쓰러움이 밀려든다. (89)

 

내가 힘들어하거나 곤란에 빠졌을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필요한 것을 채워준다. 그러고는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가신다. 그런 아빠를 우리는 슈퍼맨이라 부른다. 우리들 눈에는 항상 강한 사람으로 무적의 해결사로 당신을 지켜보며 따르려는 마음을 갖는다. (92)

 

그런 아빠의 별명은 맥가이버였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주머니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서 돌리고 자르고 끊고 하면서 뚝딱뚝딱 고쳤다. 비록 모양은 예쁘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제 기능을 복구했다. (97)

 

오늘 산천동에서 담배를 끊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빠에게 금연이 왜 그렇게 쉬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 당신이 생각해도 산천동 단칸방에 6명은 너무 가혹했던 것이다. 세 살 막내까지 힘든 환경에 데려다 놓은 것이 미안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끊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님 담배 살 돈도 없었던 것이었나? (103-104)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빠는 그때 뭔가 말하고 싶으셨다. 내가 대학교 초기였으니까 아빠 나이 50대 초반이다. 지금의 나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글을 썼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곳에 놔두었다. 그런데 가족 누구도 그 글을 이해하지 못했고, 글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117)

 

매년 아빠는 어린이날을 기념했다. 우리 모두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고 심지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날이면 뭔가 사 들고 오셨다. 결코 돈을 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모여 앉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셨다. (148)

 

그렇게 몇 년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가 그랬다, 우리 집에 웃음이 사라졌다고. 그간 말없이 내색하지 않고 지내셨던 엄마의 슬픔이 느껴졌다. 우린 그렇게 지냈다. 웃을 일을 만드는 것도 웃는다는 것도 동생에게 미안했다. 서로들 말은 안 했지만 주의해가며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함께 그 시간을 견뎠다. (155)

 

  

[목차]

 

170년생 이유진

70년생 이유진

나는 어딜 가도 상무 딸

그 시절

벽장 속 하얀 가루

I like Chopin

우리들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이기적, 아빠는 Good Man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내 나이 마흔, 불혹일까 불안일까

나이 쉰에 금주를 해보니

 

2부 신념에 관하여

뒷바라지에 관하여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형평성에 관하여형제라도 똑같지 않다고

신념에 관하여내 주먹을 믿으라고

자존감에 관하여자신을 좀 낮출 줄 알아야 한다고

제자리에 관하여할 거 하고 잘 거 자고 먹을 거 먹고

기회에 관하여다 때가 있다고

 

3부 아빠와 50년을 살았다

아빠와 50년을 살았다

슈퍼맨의 눈물

우리 집 맥가이버

쫓겨난 가장

빨간 담뱃불이 기억나

아빠도 남자다

뭐 해? 애 밥 차려주지 않고?

난생 처음 본 아빠의 글

지붕 위 주말농장

아빠가 싫어라고 했다

당신의 얼굴은 백퍼 가꾼 것이다

 

4부 딸 넷은 이렇게 자라고

할아버지의 자식들

엄마의 남편손수 엄마를 책임질 사람

혼사오다가 주웠다는 신문 쪼가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백년손님

어린이날조카가 태어나면서 없어진 날

웃음이 멈춘 순간따로 또 같이

딸 넷은 이렇게 자라고

삼겹살 사랑

엄마 아빠는 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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