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리스펙트(박연수 저, 위더스북스) 2018년 8월 출간

입력시간 : 2018-10-31 14:17:05 , 최종수정 : 2019-01-04 11:33:24, 이시우 기자

노무현의 좌절과 죽음, 그리고 부활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 현대사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무현의 죽음으로 우리의 역사 시계는 10년을 후퇴했다. 촛불 혁명과 노무현 정신의 부활 그리고 문재인의 집권, 우리가 문재인마저 노무현처럼 그렇게 떠나보낸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영원히 후퇴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한 명의 정치가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허리라는 믿음에서 그를 리스펙트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국가의 주인인 시민의 문화·사회의식은 지수함수적으로 압축 성장하는 과정을 겪어 왔지만, 전통적인 권력기관인 정치, 행정, 사법부 등의 기득권 영역은 시민의 의식을 못 쫓아감으로써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시민의 의식과 충돌하는 카오스 상태가 지속하여 왔다. 이 지루한 대치국면에 방점을 찍은 것이 시민의 의식이 행동으로 표출된 2016년의 촛불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

촛불 혁명으로 인해 시민이 주체가 되는 세상으로 사회는 빠르게 진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이를 못 쫓아가는 전통적인 권력기관은 사회 곳곳에서 시민들의 정서와 유리된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을 통해서 나타난 민의, 즉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 적폐들을 청산하고 공정하고 노동이 존경 받으며 국민주권의 헌법가치가 실현되도록 국가를 잘 이끌어 주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집약되어 출범한 정부이다. 문재인 정부는 특정 정치세력의 신념이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출범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시민의 힘으로 탄생시킨 정부이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실패한다면 시민혁명을 통해 집권했다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시민사회의 실패로 귀결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적응과 자연 선택을 하며 진화해 왔고,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러나 집단생활을 하면서 이타성의 진화로 협력적 동맹을 맺는다. 협력적 동맹관계는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떠나 상호 공존하는 체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직업, 출신학교, 부의 정도를 기준으로 특정 계층이 사회의 기득권을 독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협력적 동맹관계는 성립되지 않으며, 만인에 의한 행복한 사회 건설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가치는 실현될 수 없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압축 성장으로 경제의 총량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국민에게는 여전히 좋은 집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노동이 차별받지 않는 수평적 경제민주화, 성 평등, 사회적 약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단지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민주공화국의 가치에 부합되는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촛불 혁명의 광장에서 나타난 민심은 이념,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국민의 행복권을 실현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치를 나를 대신해 이뤄 줄 것이라고 믿고 우리는 문재인을 지지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시민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은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우리가 그를 지키는 것이 개인으로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한반도가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은, 어느 시대의 청년들과 비교해도 가장 훌륭한 스펙을 가졌고, 국가권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세대이다. 그러나 지금 그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세계의 청년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은 스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년들은 앞선 세대가 저질러 놓은 잘못들로 인해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가난한 것은 그들이 특별히 게으르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일도 아니다. 그들이 좌절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의 수고가 미래의 희망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 그렇다고 국가가 못사는 나라도 아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본주의의는 국민다수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싸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한정된 재화를 서로 차지하고자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혁명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정의로운 분배,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의 쟁취라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스템하에서도 분배의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 경제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서 경제 총량 대비 우리나라의 보편적 복지 지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런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지금 청년들의 노동수고를 최소한이라도 보장해주기 위한 각종 법안이 여의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래서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변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지형을 바꾸는, 변화를 견인하는 주체가 되는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정치 소비자이다. 정치 소비의 주체로서 그들만의 여의도 정치가 세상을 망치고 있는 것을 두고만 볼 것인가? 여의도 국회는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그리스 아고라광장이 수천 년을 건너뛰어 대한민국에서 광화문 촛불광장으로 재현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인간의 자연수명이 아무리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인간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100번 반복하면 다시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는 존재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기성세대부터 행동하고 참여하자. 우리 아이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이 질곡으로부터 해방되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나라에서 태어나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온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얘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한 개인의 인생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같은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고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이기도 하다.

국가권력이 한 인간의 생애를 절대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을 우리세대는 체험하며 살았다. 나는 불행하게도 박정희가 민주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린 2년 후인 1963년에, 실향민의 막내로 서울의 변두리 이문동에서 태어났다.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시각으로는 믿기지도 않는 일, 정말 이것이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일들을 우리 세대는 일상의 일로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청년들은 우리 세대를 고도경제성장기에 성장하여 단물만 빨아먹고 후배 세대에게는 꼰대질이나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을 민주화 세대로 포장하고 현실에서는 후배 세대들에게 체내화된 파시즘을 대물림하고 성 의식이 전혀 없는 세대라고 비난한다. 다 맞는 얘기이다. 우리 세대는 자신들을 스스로 민주화 세대라고 부르는데, 후배 세대에게는 왜 괴물로만 비치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우리 세대는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성장해온 세대이다. 뜨거운 가슴은 가졌을지 몰라도, 몸이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도 폭력은 일상화되었고, 그것은 당연시되었다. 오늘을 사는 신세대는 이러한 모순의 시대를 상상이나 해봤을까?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머리를 빡빡 밀고, 일제의 유산인 검은 교복을 입어야 했다. 이것은 국가의 시책이었으며, 저항하면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도 한겨울 강추위에 교칙에서 정하는 복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투를 못 입게 하는 학교가 있고, 복장은 물론 머리 길이를 단속하는 학교가 있다고 한다.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면, 교육계는 여전히 독재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군사정권이 만든 이념을 무조건 따라야 했다. 선생들은 군사정권의 이념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니 우리 시대의 선생들은 미래의 국가 자산인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명의식은 없고, 그 시대는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면죄부를 자신에게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우리 세대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웠겠는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근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너무나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해 한글을 떼자마자 처음으로 외웠던 것이 국민교육헌장이었고, “나는 자랑스러운~”으로 시작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다.

국가권력이 한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시대에 살았다. 개인은 국가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적인 성숙도에 따라 국가가 강요하는 가치에 종속되는 존재이다. 이러니 우리 세대는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사회의 관행으로 치부하고, 부당해도 침묵해야 자신의 네트워크 내에서 생존한다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시대를 관통하는 침묵이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것이다.

군사독재 시대에 그들의 수구가 되어 꼼짝도 못 하던 자들이 민주화 시대에 정의로운 세력을 향해 독설을 퍼붓고, 그들의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 군사독재 시대가 종식된 후 대한민국은 진보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독재의 잔영은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시 이처럼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가서는 우리 국민 모두 고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 명의 정치인을 리스펙트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에서 그를 지지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좌절과 죽음, 촛불 혁명 그리고 문재인의 집권, 우리가 문재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다시 퇴행의 역사를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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