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란 예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효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예를 논할 자격도 없다. 효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존경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부양하는 것으로 효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부양하면서 존경하고 받들지 않으면 개나 말 같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유양(能有養)을 후세 학자들이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 번째 해석은 개나 말도 주인을 봉양한다. 개는 사람을 지켜주고, 말은 사람을 위해 노역을 대신함으로써 공양을 한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공양은 하면서도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찌 개나 말과 구별할 수 있겠느냐? 마땅히 공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해석은 사람은 개나 말도 먹이고 키운다. 부모를 봉양함은 당연한 것이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과 같
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형병(邢昺) 같은 학자는 첫 번째를 주장하는 학자이며, 하안(何安), 주자(朱子) 같은 학자는 두 번째를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 주장이나 두 번째 주장이나 존경하는 것을 효의 으뜸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증자(曾子)는 『예기(禮記)』 24편 제의(祭儀) 24장에서 효자삼대효존친, 기차불욕, 기하능양(孝者三大孝尊親, 其次弗辱, 其下能養)[효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효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
고, 그다음은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그 아래는 능히 봉양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존경하는 것이 대효(大孝)이며 봉양하는 것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두 번째의 해석을 따르고 싶다. 이는 첫 번째 해석은 예로든 동물이 특정적이고 특히 말[馬]이 하는 노동의 경우는 스스로 일하는 것보다는 사람의 부림에 의하여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두 번째 해석은 사람의 행동에서 동물을 돌보는 행위와 부모를 봉양하는 도리의 차이점을 비교함으로써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봉양해야 하는가를 밝혀 효의 의미를 더욱 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효는 위로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으로서 윤리, 도덕이 이를 받쳐 주고 있다. 사랑은 아래로 흐르지만, 효는 위로 올라가는 사랑이다.
역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 투데이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