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그대로 본다면 단순히 인을 강조한 문장 같으나 공자께서 말한 본장의 뜻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는 이미 삼환(三桓)[중손(仲孫), 숙손(叔孫), 계손(季孫)]이 발호(跋扈)하여 노(魯)나라 공실(公室)[애공(哀公)]을 무시하고 실권을 빼앗아, 3가(三家)에서 권력을 나눠 분권 정치를 하고 있었고, 왕에 대한 충성을 버렸을 때라, 인의 기본이 무너졌던 때다.
팔일(八佾) 1장에서 계씨(季氏)는 무도(無道)하게도 자신의 집 뜰에서 천자(天子)만이 행할 수 있는 팔일무(八佾舞)를 춤추게 하여 악(樂)의 기본을 흩뜨리고, 2장에 보면 3가의 대부들은 무엄하게도 자신들의 사당에서 옹시(雍詩)를 취해 씀으로써, 왕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예를 무시했다. 6장에서도 계씨는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태산의 제사를 함부로 지냈다. 이 또한 예를 무시한 행위이다. 이런 것들을 본 공자께서는 “인을 버린 예나 악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하였던 것이다.
삼환은 인의 요소인 충을 버림으로써 인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예나 악은 인을 근본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인의 마음이 없으면 형식적인 예나 악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예라는 것은 스스로 이를 실천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고 악이란 이를 즐김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인은 실질적인 것이며, 실천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인의 요소인 문명이나 제도・물질 등을 운용하는 주체는 사람이며, 이 사람은 반드시 인자라야 한다. 공자께서는 위령공(衛靈公) 29장에서 인능홍도(人能弘道), 비도홍인야(非道弘人也)[사람이 도를 넓힐 수는 있으나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기 때문에 한 가지를 가지고 “이것이 인이다.”라고 할 수가 없다.
도를 실천함에 있어서의 인, 효·제(孝・弟)를 지키기 위한 인, 충(忠)을 행하기 위한 인, 예나 악을 실천하는 데에 따른 인이 모두 모습이 다르고, 실천방법이 다른 것이다.
자료제공: 투데이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