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 박사의 풍수 이야기」 사람을 살리는 땅 십승지 ⑦

제1승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를 가다(4)

1승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를 가다(4)

 

육덕지산(肉德之山) 소백산을 찾아서


소백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소백산이 태백산 동생쯤 되나? 왜 소백산이지?”

고어로 희고 높고 신령스럽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에서 유래한 산을 백산(白山)이라고 불러. 백두산, 태백산에 붙은 이 모두 다 그 뜻이고. 소백산은 몸집이 작아 소백산(小白山)’이라 부르지. 그런데 키가 좀 작을 뿐 작은 산이 아니야. 백두산, 설악산 등에 비하면 산세가 완만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여성스러운 산이래. 산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구름들, 울창한 산림과 수려한 계곡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는 명승지들, 봄에는 연화봉 일대를 뒤덮는 철쭉, 여름에는 솜다리(에델바이스)를 비롯한 들꽃으로 가득한 천상화원, 가을에는 단풍 그리고 겨울에는 유명한 설산으로 사계절 수많은 사람이 찾는 산이야.”

 

소백산 야생화와 철쭉은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워낙 고도가 높은 산이라 주 능선의 철쭉 군락은 보통 5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 만개한다. 초여름에도 철쭉의 화려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매년 5월 말에는 소백산 철쭉 만개 시기에 맞춰 철쭉제가 열린다. 소백산의 철쭉 밀집 지대는 연화봉 일대와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국망봉~신선봉으로 이어진 주 능선 일대다.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은 지역이라 철쭉과 같은 강한 식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사실 희방사에서 오르는 연화봉 일대의 철쭉 군락은 소백산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코스라 철쭉 시즌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먼 듯 가까운 듯 첩첩이 앉아 있는 산들은 한껏 물이 오른 초록으로 물들어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이 시원하다.

 

소백산은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영남 제일의 희방 폭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와 소수 서원, 중요 민속 문화재인 무섬마을 등 각종 세계적인 유산과 문화재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들여다보고 감상하는 것도 기쁨이지만 무엇보다 오늘은소백산 자락길 12자락1자락인 죽계구곡을 돌아보기로 했다. 금선정에서 내려와 풍기역에 있는 청국장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청국장 식당이 나란히 두 집이 있는데 왼쪽 집은 주인이 젊은 사람이고, 오른쪽 집은 주인이 노인일 듯하여 오른쪽 집으로 갔다. 청국장은 아무래도 경륜이 있어야 맛이 있을 것 같아서였지 차별한 것은 아니다. 오른쪽 집 주인이 노인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 오른쪽 집 간판은 고딕체라고 해서 붓글씨에서 옛날에 많이 쓰던 글자체였고, 왼쪽집 간판은 동글동글한 요즘 글자체였기 때문이다. (셜록 탐정 별 것 아니네 ㅎㅎ) 콩이 제대로 살아있는 청국장으로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십승지의 절반을 품에 안고 있는 소백산을 제대로 느껴보자고 길을 나섰다.

 

죽계천과 죽계계곡, 월전계곡을 거쳐 달밭골로 이어지는 선비길(소수서원~배점리 소백산자락길 안내소 3.89km)

구곡길(배점리 소백산자락길 안내소~초암사 3.3km),

달밭길(초암사~달밭재~삼가탐방지원센터 5.5km)

세 개 구간이 소백산 자락길 제1구간이다.

 

소백산 자락길 제1구간

 

1곡 가는 길은 순탄하다. 솔바람에 몸을 맡기고 학자수(學者樹) 소나무 숲길을 따라 소수서원을 바라보며 죽계천으로 내려섰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건너 고풍스런 분위기의 취한대와백운동, (白雲洞, )’자 바위가 보인다.‘자 바위는 주세붕이 직접 새겼다는 글씨다.

 

취한이란푸른 연화산의 산 기운과 죽계의 맑은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의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따온 이름이라 전한다.

 

퇴계가 조성했다는 취한대 아래 죽계천은 핏물로 물들었던 슬픈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1457(세조 3) 10,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그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은 반대하다가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관노에 의해 탄로 나자 이 고을 유생들과 주민들이 참화를 당하고 만다. 그때 죽임 당한 주민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듯 죽계천에 수장되었고, 그 핏물이 10여 리나 흘러내린 뒤 멎었다 한다. 지금도 피가 멎은 곳에 자리한 마을을 피끝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취한대에서 죽계천을 거슬러 오르는 사이에 소수박물관과 선비촌이 있다. 소수박물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유교문화, 서원과 향교 등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선비촌이 조성된 순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였던 안향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해, 조선시대 선비와 상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윷놀이 제기차기 장작패기 등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사육신을 그리며 금성단에 오르다

 

선비문화의 중심지 선비촌을 벗어나 제월교를 건너자 마을길 양옆으로 갖가지 나무가 무성하다. 그 오른쪽으로 금성단이 보인다. 금성단은 금성대군과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위해 모의를 하던 중 세조에게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모두 학살 당한지 127년이 지나 숙종 때 신원된 후 그 유허지에 설치되었다.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금성단 문 앞 수령 1,200여 년의 압각수(鴨脚樹) 또한 정축지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목(神木)으로 전해지고 있다. 모의가 발각됐을 때 순흥 고을과 함께 불타 버렸는데, 나라가 안정을 되찾고 순흥부가 복원되자 다시 살아난 나무라고 하니, 나무일망정 어린 임금과 신하들을 향한 애끓는 충정이 조삼모사하는 인간들보다 낫지 않은가.

금성단을 지나 금성대군이 갇혀 살았다는위리안치지(圍離安置地)’를 거쳐 아스팔트도로로 이어지는 소백산 자락길은 힘들 것 같았는데 의외로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길이었다. 토담집 앞마당 텃밭에는 싱싱한 채소가 자라고, 길가에 심어진 나무에는 새까만 오디 열매나 빨간 산딸기가 오글오글 매달려 있고, 그 옆으로는 사과나 복숭아 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가다보면 전통찻집도 있고, 음식점도 있다. 길을 잘 못 들어 우연히 본 타운하우스처럼 조성된 단독주택 지역도 있어서 또 깜짝 놀랐다. 시골에 가면 **문화주택, ##문화마을 이라며 지역 평균보다 다소 비싸게 단독주택을 몇 채 분양해서 모아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기는 조경까지 제대로 해 놓았다. 딱 봐도 분당에 있는 타운하우스랑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준이다.(느무느무 좋지만 내 수준을 넘어서는 부의 단계라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과수원을 끼고 이어지는 마을길은 배점마을로 향하는 도로로 이어진다. 도로를 향해 늘어선 나무들이 울창하여 더운 줄 모르고 걸었다. 아스팔트 도로라 그런가 문득 아까 본 너무 멋졌던 단독주택이 생각나서 우울해지더니 급 더워지고 지치기 시작할 때였다.

 

-아이구 깜짝이야!

 

풍기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졌는지 잊지도 않고 또 놀라게 한다.

 

여우 출현 주의

 

도로 곳곳에여우 출현 주의안내판이 출현을 한다.

 

-여기 대한민국 맞아?

-

-지금이 21세기 맞아?

-

-글쎄 그런데 웬 여우냐구..... 그것도 대낮에 ㅠㅠ

-...(막 헛것이 보인다...머리 풀고 소복 입은 여인이 한바퀴 빙 돈 후 ....동료로 변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좀 떨어져서 가야겠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붉은여우를 복원하고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이 운영하는 야생동물 복원시설인 소백산 여우 생태관찰원이 있는데 점프력이 뛰어난 여우들이 방사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로로 내려올 적도 있어서 알려주는 경고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깜짝 놀라서 죽이지는 말자. 또는 여우털이 탐난다고 통째 벗겨서도 안된다. 아무리 돈이 많은 영주시라도 거금의 벌금을 물릴테니. 귀하디 귀한 1급 붉은 여우니까. (내 메일 아이디가 redfox) 단독주택은 여우한테 밀려 멀리 사라졌다.

 

하평버스정류소를 지나자 소백산의 거대한 산세가 성큼 다가오고 죽계계곡이 멀리 보인다. 죽계천에서 흘러나오는 청량한 물소리에 먼 산에서 지저귀는 검은등뻐꾸기 소리까지 들려와이제 본격적인 죽계구곡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알겠다. 죽계계곡 입구에 널찍한 배점 주차장(선비촌 3.6km, 초암사 3.2km)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식을 먹고 계곡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퇴계의 제자 중 유일한 천민인 배순이 일한 대장간

 

-여기 이름이 왜 배점마을인지 알아? 퇴계 제자 중 유일한 천민인 배순이 대장간을 했던 마을이라고 해서 지어졌대.

-대장간을 했던 천민이 퇴계 선생 제자였다고?

-대단하지. 그 선생에 그 제자야. 배점마을에서 대장간을 하던 배순은 퇴계 선생이 소수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할 때 강학당 밖에서 귀동냥으로 공부했대. 그렇게 학문에 정진한 배순의 모습에 감동한 퇴계는 제자로 거두었고.

-멋지다~ 드라마나 만화책 보면 몰래 귀동냥 하는 종을 분수를 모른다고 거적에 둘둘 말아서 개패듯 패서 내쫓던데, 퇴계선생이 그릇이 아주 큰 분이셨네.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배순은 3년 상복을 입었고, 선조 임금 승하 때는 국망봉에 올라 도성을 향해 곡을 하고 이후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대.

-나라도 그러겠다. 천민인 나를 제자로 받아 준 스승님인데 입어야지 상복.

-그런 배순의 학문과 충··덕행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정려각을 세우면서 배순(裵純)자와 점방(店房)‘자를 따서배점이라 부르게 됐대. 마을 뒷산에 배순의 묘가 있는데, 마을주민들이 배순을 마을신으로 모시고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자시(子時, 23:00~01:00)에 삼괴정(배순의 정려각)에서 동제를 지낸대. 관심 있으면 동제도 한번 참석해 봐. 혹시 알어? 배순이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지펴줄지.

-안돼! 이 이상 더 똑똑해지면 인류가 곤란해져. (<----)

 

계곡 밑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 울창하고 푸르른 숲, 그사이로 보이는 하얀 바위들, 갖가지의 이름모를 꽃들과 풀들이 어우러져 빚어진 죽계구곡은 끝없이 흘러내리는 죽계천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8곡 관란대와 7곡 탁영담을 지나 6곡 목욕담에 닿았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몸을 씻었다는 곳이다. 이 맑고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을 선녀들은 이 물만큼이나 맑고 차가운 아름다움을 지녔으리라. 저 우거진 숲 어딘가에서는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흥얼흥얼 내려가니 물줄기 한가운데五曲흰색 글씨가 음각된 바윗덩이가 바라보인다. 신필하의 5곡 풍영담(楓泳潭)이다. 물가의 바윗덩이는 개울을 향해 기어가는 형상처럼 느껴진다. 사방 어디로 눈을 두어도, 놀라운 풍경들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숙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여기저기 소백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모인 물들이 죽계구곡을 따라 태곳적부터 거기 앉아 있는 바위들을 휘돌아 흐르면서 내는 소리가 4곡 용추에서는 고즈넉한 산속을 더 조용하고 깊게 가라앉는다. 용추는 죽계계곡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인데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가뭄이 들면 돼지의 목을 따 소로 던졌고, 더러운 피를 씻어내려고 하늘에서 비가 내렸단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이라고는 하나 어른 허리 정도의 수심에 불과하다. 그 옛날, 저 맑은 물 속에 던져졌을 돼지머리와 물을 따라 흘러갔을 붉은 피를 생각하니 절로 구토가 날듯했다. 그러나 하늘만 바라보아야 하는 굶주린 백성들이 아닌가. 얼마나 절박하고 또 절박했을까. 살을 빼기 위한 단식만 해보았지 굶주려 본 적이 없으니 상상 조차 사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용추를 지나 3곡 척수대(‘온갖 근심을 씻어 낸다는 의미의 이백의 시구에서 가져왔다)를 지나친 다음 죽계1교를 건너자 초암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초암사 진입로는 조금씩 경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죽계계곡 따라 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 나뭇잎을 흔들며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 힘들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오히려 걸을수록 몸이 가볍다. 죽계1교와 2교는 똑같이 돌로 연꽃 모양을 만들어 다리 난간에 붙여 놓았다.

초암사는 경사진 언덕의 입구에 깔끔한 모습으로 서 있다.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 것이 꽤 오래 된, 아담한 절임을 알겠다. 초암사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676(문무왕 16)에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하기 위해 절터를 보러 다닐 때 이곳에 임시로 초막을 지어 수도하며 기거하던 곳이라는 설이다. 둘째는 의상이 지금의 부석사 터를 찾아서 불사를 시작했는데, 서까래가 없어져 도력(道力)으로 살펴보니 이 절터에 떨어져 있었다. 의상은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라 믿고 여기에 초암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뒤 부석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초암사를 돌아나와 걷다가 상쾌한 물소리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2곡 청운대다. 본래 주세붕이 백운대로 이름 붙였는데 퇴계가 소백산을 오르다가이 근처에 백운동, 백운암 등 같은 이름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헷갈릴 것을 염려해 청운대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퇴계의 <유소백산록>에 나온다고 한다. 아무리 들썩였던 마음과 몸이라도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저 맑디 맑은 물처럼 깨끗하고 순하게 씻겨져 물 위를 따라 흐르는 초록색 나뭇잎이 된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도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네게로 가서 꽃이 되고 싶다.

시방 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아오, 증말 입을 꼬매 버리고 싶다.

 

완벽한 물아일체의 상태를 경험할 뻔했는데 같이 간 동료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너무 자연에 몰입하면 안돼. 사람이 싫어진다구. 사람은 사람끼리 지지고 볶고 살아야지.

 

초암사를 지나 울창한 숲 안으로 들어선다. 조금 걷다가 산길 왼쪽 계곡 길로 내려서자 옥빛 물이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널찍한 반석이 있다. 죽계계곡에서 가장 넓다는 금당반석(金堂盤石), 초암사 대웅전 가까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곡이다. 소 위쪽 폭포 우측 바위에 새겨진 竹溪一曲은 신필하의 글씨로 전한다. 숲 그늘 아래 호젓하게 아름다운 금당반석에 앉아 있으니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새소리뿐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금당반석 입구를 지난 후 갈림목에 이른다.

갈림목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자 잣나무가 하늘 높이 쭉쭉 자라고 있다. 자락길이 이어지는 월전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화전민들이 달이 뜰 때까지 일했다는 달밭재에 다다른다. 이 달밭재를 넘으면 예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달밭골이다. 지금도 골짜기 안에 민가가 몇 채 있다. 고개 너머 달밭동은 오전에 훑어본 명품 펜션 마을이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닮은 소백산의 죽계구곡


죽계구곡 사이로 흐르는 물

구곡(九曲)’은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 가운데 경치가 아름답거나 깊은 뜻을 간직한 아홉 굽이를 의미한다. 시초는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1130~1200)가 그의 고향 산 무이산(복건성 건녕부 숭안현)에 은거하면서 조성한 무이구곡(武夷九曲)으로 전해진다. 경상북도에는 무이구곡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물줄기와 골짜기가 많다. 봉화 춘양구곡이 그중 하나요, 성주·김천의 무흘구곡과 성주 포천구곡 또한 풍광이 뛰어나다. 소백산 죽계구곡 역시 마찬가지. 일찍이 고려 후기 문장가 근재 안축이 그 아름다움을 극찬했고,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풍기군수를 지낸 신재 주세붕과 퇴계 이황은 죽계구곡을 거슬러 오르며 자연을 탐닉했고, 그의 문하생들은 그곳에서 심신을 닦았다.



거의 3시간 넘게 걸었던 죽계구곡은, 자연의 어머니이자 대지의 여신인 소백산이 그 품 안에 사는 사람들을 얼마나 넉넉하고 다정하게 품어안고 사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알게 된 시간이고, 길이었다. 32수의 천혜명당, 십승지 중 제1승지 풍기는 귀농 또는 귀촌하거나 노후에 경제적으로 자유롭다면, 자연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넘쳐난다는 면에서 가장 먼저 손꼽을 지역이었다.

 

 

두남(斗南) 김덕기(金德起)

 

건국대학교 부동산학박사

동국대학교 법학박사

)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

) 법무법인 하우 부동산금융 수석 전문위원

) 박문각 부동산 풍수 강의






작성 2022.01.20 14:06 수정 2022.01.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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