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릉도원 봉화에서 노닐다(1)
한국의 무릉도원
풍기에서 30분 정도 달려 봉화에 도착했다.
봉화는 북으로는 영월, 동으로는 울진, 서로는 영주, 남으로는 안동과 접해 있다. 봉화의 산줄기는 북서쪽으로 백두대간이 뻗어 있고,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이 펼쳐져 있다. 태백산지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봉화 산골에서 흘러온 계곡물과 합쳐져 청량산 일대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山自分水嶺]”라는 <산경표(山經表)>의 명제에 따르면 산줄기는 물길의 울타리며 물길은 두 산줄기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물길은 두 산줄기가 만나는 곳에서 발원한다. 그리고 두 산줄기가 에워싼 곳으로만 흘러가기 때문에, 그 물줄기를 같은 곳에서 시작된 물줄기라는 뜻으로 동(洞)자를 사용하여 동천(洞天)이라고 한다. 동천(洞川), 동문(洞門)으로도 부른다.
사람들은 산줄기에 몸을 맡기고 물길에 안기어[背山臨水] 삶의 터전인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마을’에서 볼 때 산줄기는 울타리며 경계인데 물길은 마당이며 중심이다. 산줄기는 마을의 안쪽과 바깥쪽을 나누고, 물길은 마을 안의 이쪽저쪽을 나눈다.
마을사람들은 산이 건너지 못하는 물길의 이쪽저쪽을 나루[津]로 건너고, 물이 넘지 못하는 산줄기의 안쪽과 바깥쪽은 고개[嶺]로 넘는다. 그래서 나루와 고개는 마을사람들의 소통의 장(場)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들고나는 문이기도 하다.
‘마을’은 자연부락이다. 줄여서 ‘말’이라고 한다. 친근하게 ‘양지말’ ‘안말’ ‘샛터말’ ‘동녘말’ 등 주로 그 마을이 생긴 방향이나 지형물을 붙여서 불렀다. 이제는 모두 한자말로 바뀌어 ‘양촌(陽村)’ ‘내촌(內村)’ ‘신촌(新村)’ ‘동촌(東村)’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작은 물줄기[洞天]에 기댄 자연부락으로서의 삶의 터전을 ‘마을’이라 하고, 여러 마을을 합쳐서 보다 넓은 삶의 터전을 이룬 것을 ‘고을’이라 하며, 고을은 마을의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서 이루는 큰 물줄기[流域]에 기대고 있다. 봉화는 낙동강이라는 큰 물줄기에 기대어 살아온 작은 마을들이 모여서 만든 읍이다. 강원도하고도 경계가 닿아 있어 산세가 거칠고 험하며 한마디로 쎈 느낌의 지역이지만, 경상도 반가로 유명한 영주와 안동과의 접경 지역이기도 하여 사찰이며 고택 등 구석구석 볼거리도 많은, 두 얼굴의 명승지다.
봉화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래미 마을이다. 바래미 전통마을은 의성김씨의 집성촌이다. 바래미 마을은 무슨 뜻일까. 바라다에서 온 말인가 어림짐작했는데 그보다 더 먼 어원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와 같은 뜻을 가진 ‘바라래’에서 바래(海)라는 말이 나왔고, 미는 ~밑(底)이라는 말에서 변한 말이다. 즉 ‘바다밑’이라는 뜻이다.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 사이의 마을이 바다 밑이라니 의외다. 그러나 약 70년 전만 해도 실제로 마을의 논과 웅덩이에서 조개껍질 등이 나왔다고 하니 바다 밑에 있던 땅이 지각변동으로 인해 솟아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개암종택(開巖宗宅)은 의성김씨 개암공파 종택으로 ‘바래미 마을‘의 뒤에 있다. 3칸 규모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一자형의 사랑채와 Π자형의 안채가 튼 口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자리잡고 있으며, 정침의 우측에는 사당이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팔오헌종택(八吾軒宗宅)은 팔오헌 김성구(金聲久)의 종택으로, 口자형의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좌측에는 중문칸과 아랫방을 연접시켰다. 작은 사랑방 뒤로는 통래칸과 고방을 두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상방을 두고 좌측에는 안방을 두었는데, 안방의 전면에는 부엌을 연접시켰다.
만회고택
해저 만회고택은 파리장서운동 때 유림들의 연명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수여받은 김건영(金建永)의 살림집이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6칸 규모의 口자형 건물이다. 안채로의 출입은 우익사에 난 중문을 통하도록 한 측면출입형(側面出入形)인데, 평면이 측면출입형인 관계로 사랑채도 특색 있는 평면을 취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문이 있어야 할 부분에 책방을 두었는데, 책방은 퇴칸까지 돌출되어 동쪽의 큰사랑과 서쪽의 작은사랑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되게 하였다.
해와고택(海窩古宅)은 이조참의를 지낸 해와 김희택(金熙澤)의 손자인 김중수(金中銖)가 조부의 유지에 따라 건립한 주택이다. 정침은 ㄱ자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튼 口자형을 이루며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로 좌측에는 3칸 규모의 문간채가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로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건넌방을 두고 좌측에는 2통칸의 안방을 두었다. 안방의 전면에는 부엌이 연접되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독립운동의 산실 봉화 바래미 마을
바래미 마을은 조용하게 산책하기에 좋다. 가지런히 기와지붕들이 늘어서 있는 작은 마을. 실제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고택도 있는데 누가 지나가도 할 일을 하실 뿐 돌아보지 않는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여름 한낮의 쨍한 햇볕만 흙돌담 사이로 쏟아질 뿐, 기척이 없다. 고택의 툇마루 밑 댓돌은 무정형이다. 네모난 귀퉁이가 사라진지 오래인 댓돌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바래미 마을에서 내성천을 건너면 황전전통마을이 있다. 마을 앞산에 황학이 떼지어 살았는데 황학들이 내려와 앉으면 들판이 온통 누렇게 보여 황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에도 고택과 정자들이 있다. 쌍벽당과 도암정이 유명한데 봉화는 어디를 가도 물이 흐르고 우거진 숲이 있고 거기엔 단촐한 정자가 있다. 바래미 마을을 벗어나며 오래 머물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봉화읍내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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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제201호)은 줄기 끝부분의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자연암석을 파서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본존불(本尊佛)을 양각한 보기 드문 신라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좌상이다. 자연암벽을 파서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몸에 비해 큼지막한 얼굴에 고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얼굴이나 체구에 표현된 부드러운 조각 기법으로 보아 실제 제작연대는 7세기 후반기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훼손된 부분들이 있어 아쉽다.
발걸음을 북지리에서 가까운 가평리에 있는 성이성의 계서당 종택으로 돌린다. 성이성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존 모델이라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성이성은 호는 계서(溪西), 본관은 창녕이다. 1627년 문과에 급제, 주서(注書)를 시작으로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영호남 어사로 세차례 등용되었다. 각 고을 수령으로 재직 시에는 청렴 강직하여 백성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저서에 <계서집(溪西集)>이 있다.
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춘향이 부르는 애절한 판소리가 종택의 팔작지붕 너머로 끓어오르는 듯하다.
계서당 종택(溪西堂宗宅)은 조선 중기의 문신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이 1613년에 건립한 가옥이다. 6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중문간과 사랑채가 정면에 자리 잡고 있다. 경사진 산록에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높게 솟아나 보인다.
21풍수닷컴의 고재희 선생의 글을 보면 <계서당>에 대한 풍수적 고찰이 나오는데 요약하면, 풍수적으로 대박 터진 집이었다.
-집터는 생기가 왕성한 길지로, 임관수와 관대수가 들어온다. 임관수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할 수이고, 관대수는 신동이 태어날 수다. 마을 입지를 보았을 때, 후손이 번창하고 자손 모두가 발복할 것이다. 중문과 안방의 배합을 보면 음문양주, 서문서주, 토문금주로 남녀 모두 건강하고 부부 화목하며 자손이 번창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풍수적인 고찰을 하면, <계서당>은 지기가 왕성한 곳에 위치하여 좌향도 정양향의 길한 방위를 택한 복지이다. 또 안방의 방위적 배치가 연년택에 해당되어 최고로 길한 집이며, 가상도 흉함이 없다. 집안에 양명한 기운이 아름답고,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착하여 복록이 오래 머물 것이다.-
선조인 성이성이 고을 수령을 여러 차례 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더니 후손들이 그 복덕을 받는 듯하다. 풍수에서는 복도 저절로 그냥 굴러들어온다고 보지 않으며, 악인에게는 명당도 명당으로서 기능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한다. 우당고택의 좌우명처럼 ‘선을 실천하는 즐거움’이 생활화한 삶일 때 조상의 덕도 복으로 피어난다는 뜻이리라.
두남(斗南) 김덕기(金德起)
건국대학교 부동산학박사
동국대학교 법학박사
현)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
현) 법무법인 하우 부동산∙ 금융 수석 전문위원
현) 박문각 부동산 풍수 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