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 박사의 풍수 이야기」 사람을 살리는 땅 십승지 ⑨

한국의 무릉도원 봉화에서 노닐다(2)

한국의 무릉도원 봉화에서 노닐다(2)




조선 중기 충재 권벌 선생의 집성촌 닭실마을

 

닭실마을이다. 손꼽히는 경승지 닭실 마을은 조선 중기 충재 권벌 선생의 일가가 이룬 동족 마을이다. 풍기 금계리의 금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과 같은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한과로도 유명한 곳이다. 1승지 풍기에 금계 황준량이 있었다면 봉화에는 충재 권벌이 있다.

닭실마을은 처음 입향한 충재 권벌이 은거한 이후 후손들이 500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충재 권벌은 안동에서 태어나 1507년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으로 기묘사화에 연루, 파직 당하였다가 복직하나 을사사화 연장으로 일어난 양재역벽서사건으로 귀양, 유배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선조 때 충정이란 시호를 받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하늘아래 신선들이 사는마을 [청하동천(靑霞洞天)]

 

석천계곡 주변에는 유적들이 남아 있고 많은 유물이 충재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석천계곡은 폭이 넓고 골이 깊지 않다. 석천계곡 입구의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솔숲길이 이어진다. 숲길에 들어서자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있다. 청하동천은 하늘 아래 신선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가히 신선들이 살 만하다. 울창한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 사이로 바람이 불고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시끄러운 인간 세상사를 다 잊게 만든다.

 

‘~히야~으와와 으으윽~~’

원숭이가 내는 소리인지 목졸림에서 탈출한 죄수의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끊임없이 질러대는 동료를 목졸라 조용하게 만들고, 물과 바람과 소나무를 즐기고 싶다.....생각하는데 소나무 숲 사이로 석천정사가 보인다.


석천계곡의 석천정사


석천정사

 

석천정사는 1535년 충재 권벌의 큰아들 청암 권동보가 봉화의 곰솔인 춘양목으로 지었다. 초계군수로 근무하다가 향리에 돌아와 건립한 별서로 삼은 정사다. 기암괴석과 금강소나무 숲 사이에 어우러진 풍경이 자연 그대로다. 누가 지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듯 자연 속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속에 스며드는 건축을 할 줄 알았다. 자연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대상 또는 죽어서 돌아가야 할 근원지로 여긴 까닭일 것이다.

석천정사(石泉精舍)는 전체 34칸의 서원에 가까운 규모로 평면은 ㄴ자형의 편대칭 형식인데, 정면 5칸 반, 측면 2칸에 6칸 대청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정사 건물과 수직 방향으로 들어선 창고 건물인 일야각(一夜閣),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충재 선생의 신위를 모셨던 삼계서원이 철폐되자 그 신위를 모실 곳을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권동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 아버지 충재 권벌이 1547년 윤원형 등의 소윤 일당을 비난한 양재역벽사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귀양 가 1년 만에 죽자 관직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와 석천정사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1564년 선친 등의 묘소를 수호할 추원재와, 1588년 사림과 안동부사의 도움을 받아 부친의 위패를 모신 삼계서원을 건립했다.

석천정사를 지나고 계곡 숲길을 벗어나면 가렸던 하늘이 넓게 나타난다. 길 왼쪽에는 개울이 흐르고, 한편으로는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면서 멀리 닭실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걷다 보면 닭실마을 초입에 있는 충재박물관이 다. 박물관 옆에 닭실마을의 대표 명소인 청암정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청암정(靑巖亭)은 권벌이 닭실마을에 종가를 지으면서 조성한 정자로 1526(중종 21)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웠다. 주변에 못을 판 후 냇물을 끌어들여 물을 채워놓았다. 연못 안에 있는 청암정에 오르려면 각목처럼 생긴 장대석으로 만든 좁고 긴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발을 떼며,

 

-왜 이렇게 불편하게 다리를 만들었을까? 궁시렁궁시렁.....

-언제든 쉬면서 즐기려면 눈감고도 갈 수 있어야지. 옛날 사람들은 참 불편하게 살았어... 나 같으면 에스컬레이트를 설치했을텐데...

 

하필 바닥 미끄러운 슬리퍼를 신고와 오는 내내 고생한터라 바보 같은 자신에게 짜증이 잔뜩 나서 기우뚱거리며 연신 투덜투덜 중얼중얼.

 

-아마 속세의 잡다한 생각들을 버리고 오라고 이렇게 만들었나 보지.

 

(앞에서 신중하게 발을 떼던 동료가 툭, 던지는 대답에 하마터면 연못에 빠질 뻔했다. 잘 생긴 것들이 똑똑하기까지 할 때 더 재수없다.)

 

돌다리를 건너 탈속세의 세계로 든다. 청암정 난간 앞에 서면 닭실마을 앞 들판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들이 보인다.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면서 주춧돌과 기둥 길이를 조정하여 지은 집으로 주추의 높이가 각각 다른 구조다. 청암정은 주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으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알려졌다.


청암정의 전경


추원재(追遠齋)는 권벌과, 그의 부모 및 외조부모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건립한 묘하재실(墓下齋室), 닭실마을 뒤쪽의 재궁골에 있다. 9칸 규모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한 곳에는 7칸 규모의 상실(上室)이 있으며, 좌측에는 4칸 규모의 관리사가 대문채와 연접하여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우측에는 4칸 규모의 2층 누각건물인 동루를 두어 전체적으로 튼 자형의 배치형태를 취하게 하였다.

 

서설당고택(瑞雪堂古宅)은 권벌의 둘째 아들 동미(東美)4대손 권두익(權斗翼)1708년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며, 유곡리의 자연마을인 토일마을 뒷산을 뒤로 하고 마을 앞 토일천을 앞에 두는 배산임수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고택은 본체와 사당으로 구성되며, ‘자형으로 구성된 본체의 동북쪽으로는 사당이 있고, 본체와의 사이에 토석담장을 설치하여 협문으로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터의 풍수적 해석에 근거하여 담장 없이 이룬 외부 공간 구성, 17세기 이후부터 두드러지는 내외 공간 구분과 사랑채의 돌출, 사당의 독특한 팔작지붕은 문중 고유의 상대적 독창성을 지닌 두드러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삼계서원(三溪書院)1588년에 충정공사(忠定公祠)를 건립하여 권벌의 위패를 봉안하여 오다가 1660년에 삼계서원으로 사액되었고, 1871년에 훼철되었던 것을 1960년에 복설하여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서원의 배치는 콘크리트조의 2층 누각인 관물루(觀物樓)를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인 정일당(精一堂)이 있으며 강당의 좌우에는 동, 서재를 배치하였다. 강당의 뒤에는 사당인 충정공사가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관물루 우측에는 충재선생묘허비각이 있다.

 

닭실마을에서 석천계곡을 따라 석천정사와 삼계서원까지 걷는 길도 제법 좋다. 금계포란형의 공통점은 단아한 정자가 있고, 수려하지만 깊지 않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명당치고 어떤 형인들 수려하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 하다못해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도 잘생기고 예쁜 애들이 성격 좋고 싹싹하다. 못생겼다는 자괴감과 수치심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우울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다. 자기방어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를 예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 쓸데없는 태클은 사양하겠다.

 

 

 

두남(斗南) 김덕기(金德起)

 

건국대학교 부동산학박사

동국대학교 법학박사

)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

) 법무법인 하우 부동산금융 수석 전문위원

) 박문각 부동산 풍수 강의



작성 2022.02.10 13:46 수정 2022.02.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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