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 박사의 풍수 이야기」 사람을 살리는 땅 십승지 ⑩

한국의 무릉도원 봉화에서 노닐다(3)

한국의 무릉도원 봉화에서 노닐다(3)

 

황전전통마을에도 의성김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황전전통마을로 들어서면 경암헌고택, 송석헌고택, 동암서당을 돌아볼 수 있다.

경암헌고택은 10대조인 김종걸의 조부가 장인인 남구수로부터 가옥을 이어 받아 의성김씨의 종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정침의 오른쪽 뒤에는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평면은 중문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외양간과 못방을 두고, 우측에는 사랑방 2칸과 사랑마루 1칸으로 구성된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안채는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는데, 안방의 전면에는 부엌을 연접시켜 좌익사를 이루게 하였고 건넌방의 전면에는 통래칸과 고방이 우익사를 이루고 있다.


경암헌고택


송석헌고택은 동암(東巖) 권이번이 아들인 선암(仙巖) 권명신(權命申)에게 지어준 살림집이다. 7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높은 축대 위에 자형으로 정침이 자리잡고, 중문칸 우측에는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사랑채의 전면에는 누마루인 영풍루(迎風樓)를 두었고 영풍루와 사랑채는 계단으로 연결시켰으며, 정침 좌측에는 못채와 방앗간채를 배치하였다. 사랑채의 우측에는 선암재(仙巖齋)를 두었으며, 정침의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송석헌고택


동암서당은 동암 권이번(東巖 權以璠)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후손 소암 사설, 소산 사주, 송학헌 윤석 등이 1749(영조 25)에 건립하였으나 1785(정조 9)에 동산사(桐山社) 창건으로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상운면 일대에는 봉화금씨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군위공종택(軍威公宗宅). 종선정. 무진장재(無盡藏齋). 쌍송정(雙松亭) 이 있고법전면과 춘양면에는 진주 강씨의 집성촌이 있다.

강씨종택. 해은고택(海隱古宅). 기헌고택. 법계서실. 경체정. 뇌풍정(雷風亭). 이오당(이오(二吾)라는 당호는 낙오천(樂吾天)하여 종오년(終吾年)한다는 의미. 자연을 즐기다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만산고택(晩山古宅). 와선정 등이 있다. 이들 고택들은 모두 조선시대의 풍수사상을 기본으로 지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조에 들어와 분명하게 유교국가의 이념이 확립되면서 풍수사상은 양기(陽基) 위주의 도읍풍수로부터 음택 위주의 묘지풍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안정되었다는 점 외에도 효()의 관념이 적극적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이 주요 이유라고 생각된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역시 도참과 결부되어 성행하던 풍수지리설에 크게 영향 받은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치기반 확립에 유효적절하게 이를 이용하였다. 나라 이름을 새로이 정하기도 전에 새로운 수도의 결정부터 꾀할 정도였다. 당시 수도 후보로 거론되었던 한양(漢陽)모악(母岳)계룡산(鷄龍山)개경(開京) 등지의 풍수적 입지에 관한 당대 풍수지리가들의 논전은 풍수사에 빛나는 업적으로 남을 만한 기록이다.

 

당시 풍수사상은 민중들의 세계관을 표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즉 홍경래(洪景來)나 전봉준(全琒準) 등은 풍수사상의 메시아니즘적 측면을 강조한 인물들로 풍수사상을 바탕으로 유3교를 통합하고, 나아가 전통적 민족사상까지 포괄함으로써 민중의 구심점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춘양면으로 건너가면 한수정과 권진사댁이 눈여겨 볼 만하다.

권진사댁은 성암(省菴) 권철연(權喆淵)이 살던 집인데, 건너 마을인 운곡마을에서 이곳으로 옮겨 건립하였다. 9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자형의 정침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당의 좌측에는 3칸 규모의 서실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쪽 허리부분에는 토석담장을 설치하여 내외공간을 구분하였으며, 담장 사이에는 일각문을 세워 안채로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한수정(寒水亭)은 충재 권벌이 세운 거연헌(居然軒)이라는 모막(茅幕)이 있던 자리에 손자인 권래(權來)가 건립한 정자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寒水亭)’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정자는 T자형으로 정자의 주위에는 와룡연(臥龍淵)’이라 불리우는 연못이 삼면에 조성되어 있으며 서쪽 연못과 정자 사이에는 초연대(超然臺)’라 불리는 넓은 바위가 있다.


보물 제2048호 봉화 한수정



설매리와 분천리에는 까치구멍집과 도토마리집이 있다.

설매리 3겹 까치 구멍집은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소유자의 7대조가 건립하여 대를 물려 살아왔다고 한다. 지붕은 1970년대에 시멘트기와로 개량하였던 것을 1996년에 다시 이엉으로 환원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봉당이 나오는데, 봉당의 좌우에는 외양간과 정지를 두었고, 봉당 뒤쪽에는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사랑방과 샛방이 앞뒤로 배치되어 있고, 우측에는 안방을 두었다.

설매리 겹집은 1840년경에 건립된 초가 까치구멍집이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자형 겹집이다. 우측에는 3칸 규모의 초가집인 못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의 배치를 이루었다. 본채의 전면은 봉당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외양간을, 우측에는 정지와 안방, 벽장을 연접시켰다. 후면은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사랑방을 두었고, 우측으로는 작은 마루를 1칸 더 연접시킨 후 고방을 배치하였다.

분천리 까치구멍집은 수안골안쪽의 산기슭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어간의 두짝 판문을 들어서면 봉당을 사이에 두고 마루칸이 나타나는데 마루 뒤에는 좁은 도장방을 설치하였다. 좌측 칸에는 부엌과 안방을 앞뒤로 배치한 후 부엌 앞에는 마구간을 돌출시켜 전체적으로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으며, 우측 칸은 통간으로 사랑방을 꾸몄다.

분천리 도토마리집은 평면은 어간의 정지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안방과 도장방을, 우측에는 외양간과 사랑방을 연접시켰다. 정지를 가운데 둔 평면 형태가 베틀의 도토마리와 유사하여 도토마리집이라고 부른다. 이 집은 이러한 평면적인 특징과 함께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춘 것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두남(斗南) 김덕기 (金德起)

 

건국대학교 부동산학박사

동국대학교 법학박사

)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

) 법무법인 하우 부동산금융 수석 전문위원

) 박문각 부동산 풍수 강의


작성 2022.02.17 15:06 수정 2022.02.2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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