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동경 유학생 그리고 토월회 이야기 (김을한 저, 도서출판 탐구당)

입력시간 : 2019-04-12 16:12:49 , 최종수정 : 2019-04-12 16:12:49, 이시우 기자



책소개

동경 유학생은 일찍이 일본에 유학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해방 전 우리나라 인텔리들의 대부분은 일본 유학생 출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이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웃나라일 뿐더러 미국이나 영국 같은 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여권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자연히 외국 유학을 하자면 일본 밖에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현상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더욱 심하였으니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일본 유학생의 존재는 무시하려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정치, 경제, 학술, 체육, 문화 등 각 방면에 끼친 유학생의 공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막대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가 일본 유학생 출신 중에서 많이 탄생하였다. 그들의 독립운동 및 유학생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또한 토월회 설립자 박승희 선생의 토월회 이야기와 담담한 연극에 대한 열정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동경 유학생이 들려주는 2.8 독립 선언 및 독립운동, 관동 대지진, 동경 유학 일상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 책은 1986년에 처음 발간되었으며 원래 목적은 비록 과거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강점이 있었지만 다시 일본과 손을 잡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에 대해 더 잘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였는지를 동경에서 생활한 유학생의 관점에서 서술하며, 함께 할 것은 함께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시대가 변하였음에도 그 메시지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에 놀랍고 흥미롭다.

 

2.8 독립 선언의 내막

2.8 운동의 동기는 어디 있었는가? 1917년 10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음해 6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였다. 식민지 통치 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전 세계 수많은 약소민족에게는 일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에게 병합된 지 10년 동안 2천만 민족의 가슴속에 맺힌 망국의 한을 풀어 볼 길이 없어 오직 그 기회만 노리고 있던 차에 이 소식을 듣게 되니 국내의 지도층은 물론이고 해외의 뜻있는 동포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우리 일본 유학생들은 그해 여름부터 이에 대한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학생계의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등이었다. 그때 동경에는 유학생 학우회가 있어서 말하자면 학생 운동의 중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3인은 모두 학우회의 회장이나 총무를 역임한 바 있었다. 최팔용은 그때 학우회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이라는 잡지의 편집국장으로 있었고 나는 그때 편집위원이었다. 이런 관계로 피차 의기가 상통하였다. 여름 방학 때 그는 나에게 단둘이 어떤 조용한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8월 중 아닌가 한다. 그때 그의 말이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제창은 우리가 조국 광복을 부르짖기에 절호의 기회가 아니냐고 하던 것이 역력히 생각난다. 그러므로 2.8 운동의 시작은 1918년 8월경부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관동 대지진의 비극

그중에도 억울한 것은 조선의 노동자와 유학생들이었다. 그 분란통에 조선 사람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집에 방화를 한다는 헛소문이 퍼져서 그 때문에 조선 사람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치고 찌르고 죽였다. 실상인즉 뜻하지 않은 큰 지진으로 인심이 소란하여 그때 갓 들어온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로 말미암아 잘못하다가는 혁명이 일어날 우려가 있으므로 간악한 일제는 민중의 분노를 애꿎은 조선인에게 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지진을 틈타서 조선인이 불온한 계획을 하고 있다.’는 낭설을 퍼뜨렸다.

 

그리고 토월회 이야기

토월회 하면 노년층에겐 그렇게 낯선 것도 아니다. 한국 신극 운동의 연륜은 이 동인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오늘의 연극인들 가운데서도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음은 어찌된 까닭일까? 여기에 또 하나 잃어가는 정신의 유산이 있다. 이 유산이 더구나 생존자의 손으로 다듬어져 우리들 독자 특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을 편집자로서는 다행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토월회가 1922년 일본 동경일우東京一隅에서 발단하여 10년간에 걸쳐 87회의 공연을 하는 사이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숨은 이야기와 연극인의 피어린 고심을 되뇌어 앞으로 있을 한국 연극 예술 운동에 하나의 빛이 된다면 더욱 더 다행인 줄로 알겠다.



지은이 소개

김을한(1905~1992)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였다. 동명(東溟) 김을한은 190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을사년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을한(乙漢)으로 지었다. 병자호란 때의 충신 김상헌의 후손인 그는 교동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보 2학년 때 3·1 운동을 맞았다. 그 직후 동경으로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는 김기진 등과 함께 극단 토월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귀국한 직후인 1924년, 조선일보 한기악 편집국장의 발탁으로 신문기자가 되었다.

사회부 기자 김을한은 그 당시 발생했던 큰 사건들을 밑바닥에서부터 파헤쳐 일제의 악랄한 식민 정책을 폭로함으로써 이름을 떨쳤다. 광주 학생 운동, 장진강 토지 사건, 만주 사변의 치열한 현장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생생한 실상을 보도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을한은 서울신문사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게 되었고, 이때 영친왕을 처음 만났다. 이후 20여 년 동안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언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차례

 

머리말 5

 

제1부 가깝고도 먼 나라

서설 13

개방과 폐쇄의 차이 18

서구문화의 재수입 22

일본유학 제1호 24

갑신정변과 일본 28

지일파가 배일파로 31

2.8 독립 선언의 내막 35

죽음을 각오한 궐기 39

3.1 운동이 터지다 43

독립운동의 시초 46

문화계의 선구자들 48

고학생 52

일본 육군 사관 학교 54

첫 민간 비행사 탄생 56

스포츠계의 스타들 59

Love Is Best 62

동경 유학의 여파 65

3월 1일의 감격 68

나의 일본 유학기 71

가시마 아리 75

남의 은혜를 알다 79

토월회와 관동 대지진 82

여자 유학생의 활약 86

박순천 여사의 증언 90

마음의 고향 YMCA 104

재일본 한국 YMCA의 공헌 108

동경 조선문화사 112

창씨개명은 일본인도 반대 115

연락선에서의 촌극 120

왜 죽으러 가라느냐 127

불치의 섬나라 근성 137

쑨원과 황싱 142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 148

패망 전야의 동경 165

 

제2부 토월회 이야기

東京市 錦町 3丁目 18番地 185

술로 드샌 봄날 저녁 189

시대의 요구로 토월회 조직 192

싹트기 시작한 연극에의 정열 196

여름 방학 선물 200

기생도 하기 싫어하는 여배우 일 204

대본이 필요없다는 신파 배우 209

처음 보는 신극에 열광하는 관객들 214

전문 극단으로 변모한 토월회 220

토월회 만세 부르다 연행 224

남은 것은 빚뿐 229

극본난 234

자금난 241

연극 상설관을 세우다 245

촛불을 켜놓고 연극 상연 251

정열과 희망으로 고난 극복 255

악단의 여왕 윤심덕 오다 260

인기를 모은 연극 <춘향전> 264

지방 순회공연 269

대성황 273

광무대 직영 실패 277

조선 극장에 다시 모이다 282

감격의 <아리랑 고개> 287

해방 후에도 공연 291

드디어 해산하다 294

附記 선구자는 외롭다 - 박승희를 추억하며 299

Copyrights ⓒ 북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시우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