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2화 장희빈

[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2화 장희빈

 

장희빈의 이야기는 안방극장의 단골 메뉴입니다. 영화는 ‘춘향전’이 우리 국민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러 번 영화화 되었지요. 그에 반해 장희빈은 본명이 옥정으로 독부, 악녀로 몇 번 방영되었습니다. 뒤에 김혜수의 장옥정은 악녀 이미지를 벗으려고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장옥정은 어떤 여자였을까요?

“나인(內人)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에 실릴 만큼 미모가 뛰어났습니다. 옥정이 궁에 들어온 사연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극적인 야담이 하나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 때 임금 자리에 올랐지만, 드센 신하들을 손아귀에 움켜쥘 정도로 당찬 숙종이 아버지 현종의 묘소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에 부왕을 모신 숙종이 가마를 타고 갈 때 청계천을 지나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임금 행차이니 집으로 들어가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역관의 딸이었던 옥정 역시 자기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린 임금의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임금은 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아이돌처럼 그 또래의 우상이기도 했으니까요.

‘임금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이야? 한번 꼬셔볼까?’

혹시 이런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지요. 미모라면 한 미모 하는 장옥정 아닙니까? 그녀의 집이 청계천변에 있었습니다. 방의 창문에는 발을 드리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발 틈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뿌우~ 나발 소리와 함께 임금님 가마가 좁은 청계천을 지나갑니다. 옥정이 숨을 죽이며 밖을 내다보는 순간 발이 툭 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절세미인과 숙종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운명의 시간이었지요. 옥정이 얼른 몸을 낮춰 피했지만, 숙종의 뇌리에는 그녀의 미모가 콱 들어박혔습니다.

돌아가신 부왕을 애도하는 대신 들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온 어린 임금은 당장 옥정을 불러들였습니다. 이렇게 러브스토리가 시작되었는데 양반의 딸로 들어온 조신한 왕후와 달리 자유 분망한 옥정에 홀딱 빠졌습니다. 왕후가 잘 다듬어진 화초였다면 옥정은 화려한 들장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나이 먹어 궁에 들어온 옥정이 임금을 홀릴까 두려워 숙종의 어머니가 등 떠밀어 쫓아내기까지 했겠습니까? 그러나 숙종은 모후가 돌아가자마자 얼른 옥정을 궁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 옥정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숙원의 벼슬을 받고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때부터 왕후 다음 자리인 희빈이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정실부인인 왕후가 있음에도 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만들어 다음 후계를 맡기로 한 것이니 노비 출신의 어머니를 둔 옥정은 그야말로 신데렐라였습니다.

기고만장해서 남인을 등에 업고 인현왕후를 쫓아내고 왕비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고 화려한 꽃도 오래가면 시드는 법입니다. 첩하고 정실부인의 역할이 같겠습니까. 가뜩이나 변덕이 심한 숙종은 왕비가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것과 학식과 교양이 없는 것에 싫증이 났습니다. 게다가 뭐라고 하면 꼬박꼬박 말대꾸하니 타고난 왕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숙종은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을 눈치 챈 서인은 재빨리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남인은 정사에 실수가 잦았기에 숙종은 환국(換局)합니다. 서인으로 정권을 바뀌면서 쫓겨났던 인현왕후가 다시 그 자리에 앉고 남인을 배경으로 하는 옥정은 희빈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장희빈은 뒷방에서 10년을 넘게 숙종을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궁 안에 젊고 예쁜 여자는 차고 넘쳤기 때문입니다. 장희빈은 이렇게 쓸쓸하게 지내다 결국 사약을 먹고 죽게 됩니다.



이시우 기자
작성 2018.08.14 11:25 수정 2019.12.30 12:13
Copyrights ⓒ 북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시우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